역사산책 3: 솟대, 솟아오름에 대한 상상 서용순 작가
긴 장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용틀임을 하듯 비틀린 나뭇가지에도 새들이 저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꼭 무언가를 염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상징적인 새, 솟대 새다. 사람들은 이 새를 나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어귀에 세워 놓았다. 솟대는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또 그 마을에 큰 인물이 났을 때 기념으로,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세운 공동 신앙의 상징물이다. 이 솟대를 현대적 조형물로 재창조해 낸 솟대마을에 다녀왔다. 오랜 세월 솟대 작업만을 고집해 온 한 조각가가 우리 고유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그의 작업장은 허름한 농가지만 곱디고운 야생화로 둘러싸여 운치를 더해 주었다. 또 그가 손수 지었다는 취산정(就山亭)에 앉아서 보니 개천산(開天山)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래서 지금 그의 유일한 식구인 개 이름을 개산(開山)이라 지었다던가.
솟대 마을 입구는 물론 마을 안길에 크고 작은 솟대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그의 작업장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쭉 내민 얼굴을 새겨 넣은 남성 심벌 조각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가 솟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젠가 권옥연 화백의 작품에서 솟대를 본 후부터라고 한다. 유명 작가 작품 속의 소품으로 등장한 솟대가 미술관 관장을 지낸 그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때 솟대가 왜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가족과도 떨어져 살면서 20여 년간 솟대만 만들어 온 그의 삶은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우리 민속신앙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원은 삼한시대 때 신을 모시던 장소, 소도(蘇塗)에서 유래한다. 그 소도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솟대의 모양은 다양한 형태가 있으나 보통 긴 장대 위에 새가 올라앉아 있다. 그 장대를 통해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인간들이 신에게 가까이 갈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솟대 위에는 기러기, 오리, 갈매기 등 대부분 물새류가 오른다. 물새는 하늘과 땅과 물을 활동의 근거로 삼고 있기에, 하늘과 땅만을 활동 영역으로 삼는 들새나 산새보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곳 솟대 조각가는 기러기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 준다. 위계질서가 분명하여 사람에게도 귀감이 되는 기러기를 재현해 보임으로써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우리 도덕심을 경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러기의 머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있다. 하지만 산 쪽을 바라보는 것도 있고, 물 쪽을 향해 있는 것도 있다. 여기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단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이 나오기를 기원하거나 풍농(豊農)을 빌 때 기러기의 머리 방향이 각각 다르다. 또 기존의 솟대는 길고 밋밋한 장대인 데 비해, 그는 뒤틀리거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 즉 다른 사람의 눈길 밖에 난 나무를 작품으로 환생시켜 놓았다. 그것이 오히려 비상하려는 기러기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처럼 역동성이 느껴졌다. 솟대를 구성하는 장대의 중요한 상징성 때문에 예전에는 솟대 만들 나무를 십여 년 동안 정성스레 키워 일정한 의식을 거친 후 벌목하여 썼다고 한다. 또 가능하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우마(牛馬)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산에서 자란 나무가 효험이 있고, 나무를 베어 올 때도 부정을 타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 그 일을 맡았단다. 이런 솟대는 높을수록 좋고, 넘어지지 않고 오래갈수록 상서로운 것으로 여긴다. 특히 과거 급제 기념으로 세운 솟대가 이삼십 년 지나도록 보존될 때는 그것을 세운 이가 주인으로부터 상을 받았다고 한다.
솟대는 대체로 마을 어귀에 세운다. 마을 어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드나드는 장소이고, 때로는 재액과 역병, 부정이 침입하는 곳이기도 하다. 곧 마을 어귀란 마을 안의 신성과 질서의 세계와 마을 밖의 부정과 무질서의 세계가 경계를 짓고 동시에 접촉하는 공간이므로 보다 강한 신성으로 마을을 지키려 했던 것이리라. 그런 솟대를 이 조각가는 밖에서 안으로 끌어들여 마을을 복합적인 솟대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방명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의 손길을 거쳐 태어난 솟대들이 그들의 염원을 실어 나르는 메신저 같기도 하다. 나도 그중 하나에 간절한 소망을 실어 놓았다.
그분을 만나고 얼마 안 되어 한 일간지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을 수호신, 도시로 외출하다ㅡ경원대 시각디자인과 솟대전’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한국 전통신앙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고 마을을 지켜 준다고 믿었던 솟대를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학생들이 현대적 디자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동 갤러리로 달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솟대들을 만났다. 나무에 기상천외한 옷을 입혀 색실과 철사를 촘촘히 감아 놓기도 하고, 헝겊과 버클, 종이, 나뭇조각을 붙여 독특한 촉감과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런가 하면 티셔츠, 달력, 머그컵 등에 솟대 그림을 넣어 문화상품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우리 고유문화가 다양한 디자인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거기서 그보다 더 값진 가능성을 보았다. 이 ‘솟대 디자인 문화운동 작업전’을 통해 그들이 얻었을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 얼마나 소중한 체험이랴. 하늘과 땅과 나무와 새와 바람과 사람이 만나 성스러운 우주를 만들어 내고, 인간의 자유와 꿈을 발현시키는 우리 문화의 상징물을 자신들의 손으로 형상화하는 기쁨, 그것이 이들에게 ‘솟아오름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였을 것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높다란 장대를 땅 위에 꽂는다. 그 장대 위에 나무새가 앉아 있다. 바람이 불어와 장대를 어루만지며 잠든 새를 일깨운다. 이윽고 새가 하늘을 향해 비상한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은 새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나는 솟대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어 보며 나무를 하늘과 땅과 지하를 이어 주는 통로로, 솟대 새를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하늘새로 승화시킨 우리의 심오한 우주관을 발견했다. 또 우리 신념 속에 자라는 염원을 하늘새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한 조작가의 견고한 힘을 믿게 되었다. <저작권자 ⓒ 디아거스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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